'금기어'였던 독립운동가..학암 이관술의 삶
(앵커) 오늘은 107번째 삼일절입니다.
무려 80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누명을 벗은 독립운동가가 있습니다.
울산 출신 학암 이관술 선생의 삶과 늦게 찾아온 명예 회복의 과정을,
성기원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긁히고, 깨지고, 한때는 땅속에 묻혔던 비석 하나.
망치 자국과 굴착기에 긁힌 흔적은 한 독립운동가가 겪어야 했던 80년의 세월을 닮았습니다.
1902년 울주군 범서읍에서 태어난 학암 이관술 선생.
동경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한 엘리트였지만 출세 대신 항일운동을 택했습니다.
여성 교육 현장에서 민족계몽에 나섰고, 일제의 감시 명단에 오르며 옥고를 치렀습니다.
해방 직후에는 조선공산당 간부로 활동하다 1946년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의 주모자로 몰려 무기징역을 선고받습니다.
그리고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3일, 대전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인터뷰)배문석/학암이관술기념사업회 사무국장 '해방 이후 누명을 쓰고 1950년 학살당한 이후에는 그 말을 꺼내는 것조차 금기어로 오랫동안 남아 있었기 때문에 잊히게 된 거죠. 강제로 잊히게 만들었던 겁니다.'
일제에 맞섰던 독립운동가의 이름은 해방 이후 오랫동안 '금기어'가 됐습니다.
2020년 첫 서훈 신청도 '해방 후 행적'을 이유로 보류됐습니다.
(인터뷰)손옥희/故 이관술 선생 외손녀 '(첫 서훈 신청 때) 제가 혼자 가서 했어요. 자료 모으니까 한 박스 되더라고요. 이 정도 하면 되겠지 (싶었는데) 아 진짜 첩첩산중이구나. 갈 길이 너무 멀다.'
유죄 판결은 79년 만인 지난해 12월, 법원의 재심에서 무죄로 뒤집혔습니다.
유족은 지난 1월 다시 서훈 절차에 들어갔고 선생의 삶을 기록하는 작업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과제가 남았습니다.
재개발을 앞둔 이 마을에서 비석은 다시 머물 곳을 찾아 자리를 옮겨야 합니다.
(인터뷰)손옥희/故 이관술 선생 외손녀 '진실은 80년, 100년이 지나도 밝혀진다. 그러니까 우리가 앞으로 정의롭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런 거를 보여주지 않겠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ubc뉴스 성기원입니다.
-2026/03/01 성기원 기자
뉴스 제보 안내
02. 웹하드 제보
ubc제보 웹하드에 직접 촬영한 영상을 올려주세요. webhard.ubc.co.kr
ID: ubcnews
PW: ubcnews
04. 전화/팩스 제보
ubc 전화, 팩스를 통해 제보내용을 보내주세요.
TEL. 052-228-6363
FAX. 052-228-6345